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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광복절 63돌을 맞으며
일제에 의한 36년간의 식민통치가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의 날을 맞은 지 63돌이다. 그 광복의 기쁨을 맞보았던 이들은 이미 70을 넘는 고령이 되었다. 소위 해방둥이로 태어난 사람들이 63세이니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이랴. 그래서인가, 광복의 의미를 마음으로 느끼며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국가적 미래를 다짐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광복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투쟁을 했으며, 광복의 날을 고대하며 힘을 모았던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을 했기에 비록 연합군에 의한 일본의 패망이 가져다준 것이지만, 광복의 날을 맞을 수 있었다. 광복의 날을 바라는 것은 누구 하나 예외가 아니었다. 특별한 사람 몇몇이 자신들을 위해서 싸웠던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들의 희생을 자청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광복의 날을 보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먼저 갔다. 그들은 이 땅에서와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각각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오직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몸도, 맘도, 재산까지도 희생하기를 자처했다. 하나 정작 그들은 광복을 맞은 조국을 보지도 못했고, 또 많은 사람들은 광복 이후에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그들이 싸웠던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얼마나 기뻤을까. 얼마나 감격스럽고, 돌아오고 싶었을까. 하지만 광복의 기쁨도 잠시였다. 광복을 맞은 조국은 하나가 아닌 둘이였기 때문이다.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다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 진정 자신의 조국인지. 그들은 스스로 혼란스러웠다. 결국 그들 가운데는 끝내 광복을 맞은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을 떠돌며 유랑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도 있다. 광복을 맞았으나 이 땅엔 아무 것도 없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연명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마저도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그뿐이던가. 불과 5년이 못돼서 분단된 이 나라는 남과 북이 철천지원수나 되는 듯 전쟁을 치러야 했다. 동족상잔이라는 말로 그 잔혹함과 처참함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있는 것도 없었지만, 전쟁의 결과는 폐허뿐이었다. 그래도 광복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해서 광복기념일을 맞을 때면 다시는 국가를 잃는 서러움은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시는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는 일은 당하지 않겠다고 확인을 했다. 그리고 잘 사는 국가를 세워보자고 했다. 교회들도 그랬다. 식민지시대에 교회가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오직 민족의 광복을 위함이요, 신앙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들은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민족의 계몽을 위해서 앞장섰으며, 독립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뛰어다녔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조차 아스라한 것일까. 광복의 감격이나 광복의 의미를 느끼고, 다시 새겨보는 일조차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당시를 경험했거나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이 중심이 돼서 회관에 모여서 이제는 고령인 그들만의 기념식으로 조촐한 행사를 하고 나면 끝이다. 마치 국민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은 기념행사를 치르는 것이 전부다. 국가도 적극적으로 광복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계승시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단지 국가 공휴일로 생각해서 휴가계획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회들도 국가 공휴일이기 때문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행사를 하기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1990년대 중반기 까지만 해도 교회들은 광복절 기념집회를 열었고, 구국 기도회를 열어서 광복의 의미와 국가적 미래를 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들도 광복절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반드시 예전과 같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비록 특별한 행사는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광복절이 가져다주는 국가적 교회적 의미에 대해서 분명하게 고취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래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그 열매로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데, 과거에 대한 관심도, 미래를 위한 현재의 수고도 없으니 우리의 미래는 정녕 기대할 수 있는 것일지. 광복의 기쁨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것일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이전투구나 하고 있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니 어디다 호소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선지자로서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련만 교회들마저도 자기중심으로만 세상을 보려는가.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니 어찌할는지. 63돌의 광복절을 맞으며 미래를 심으려하지 않은 위정자들이나 교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이를 데 없다. 교회들만이라도 식민통치의 역사를 기억하여 국가와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최소한 고민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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