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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목사/ 인천 만수남부교회
[시론] 종교와 권력

▲지난 27일의 범불교도대회 모습©뉴스미션

지난 주간 휴가차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며칠 동안 쉬면서 하지 못했던 일도 하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저녁나절 산책이나 할 겸 가까운 곳의 한 사찰이 있어 경내를 걷고 싶어 찾아들었다. 전나무 숲이 오대산을 연상할 만큼 울창하고 조용한 것이 정말 걷고 싶은 길이었다.

한데, 얼마 걷지 않아 전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걸려있는 현수막 몇 개가 눈살을 거슬리게 했다. 무슨 현수막을 이런 곳에 걸었을까. 평소에 현수막 문화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한 터라 내용을 보기도 전에 마음이 언짢았다. 다가가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언짢은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MB, 종교편향 저지를 위한 법회’를 한다는 것과 시간과 장소를 적시해서 서울로 가자는 구호가 담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어제였다. 정말 전국에서 상경한 ‘종교편향 저지를 위한 불교인들의 대회’가 서울 한 복판에서 열렸다. 주최 측 추산 20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각종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이 사실을 전했다.

그동안 우리는 국론의 분열로 인한 국가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정치적 이념과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로 몸살을 앓으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에너지의 손실을 자초했다. 그런데 이번엔 종교적 편향성 문제로 인해서 국민이 양분되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국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는가. 그 근본적인 원인은 종교가 종교 본연의 입장에 있어서 각각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종교가 정치적, 경제적 힘을 빌리려 함으로써 문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포교를 위한 목적이든, 아니면 경제적 이익이나, 나아가서 종교적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든 그 종교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고, 종교 외적인 힘을 빌려서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종교편향이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이번에 문제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언행에서 그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로서, 혹은 기관의 장이나 요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종교를 이용해서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내려고 하거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도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직이란 것이 무엇인가. 적어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영역과 영역주권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섭리적 원리를 조금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번의 경우와 같은 언행은 없었어야 할 일들이다.

이와 같이 종교가 다른 어떤 힘을 빌려서 종교적 목적으로 성취하려고 하거나, 종교적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고, 그러한 미혹으로부터 종교 스스로가 벗어날 수 있어야만 종교로서의 기능과 역할과 권위를 확보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확고하게 가지지 못한다면, 종교 외적인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코 그 종교의 본질적 가치에는 이를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종교와 종교 지도자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대선이든 총선이든 출마자들이 평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다가 선거 때만 되면 종교단체와 종교지도자들을 찾아다니는 현상에서 알 수 있다. 그 중에도 심각한 수준의 후보자의 경우는 본인과 배우자가 각각 다른 종교를 가졌다고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국민들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후보자가 국가를 위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는가 하는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책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권자 또한 그 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후보자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무조건 지지한다면, 이 또한 유권자로서 국민의 종교적 편향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종교적 편향성 문제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결국, 종교적 편향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는 종교 본연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지도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수준이 이정도인가 하는 자조적인 느낌마저 부인할 수 없는 심정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신중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고, 더 성숙한 모습을 자기 안에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종교가 되었든 마찬가지다. 종교는 그 종교의 가르침에 충실함으로써 생명력과 가치와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든, 종교(내지는 종교 지도자)가 정치를 이용하든 각각의 입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계라면, 종교도 정치도 결코 본연의 직무와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즉 종교와 그 지도자들은 그것이 비록 종교적 목적이라 할지라도 진리가 아니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다면, 신자들을 내세워 자기 집단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일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를 성토하는 궐기대회에 모인 것까지도 단지 자신들의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본연의 진리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종교와 권력은 유사 이래 항상 함께해왔다. 그러나 종교가 권력을 가지면 종교는 변질되었고, 권력이 종교를 가지면 종교의 이름으로 불의를 정당화시키는 폭력과 독재정치를 행사했다. 이렇게 종교와 권력은 함께 하면 공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양자의 관계는 언제나 서로를 필요한 것으로 느끼고 있기에 유혹을 받는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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