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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교수/ 총신대 신학대학원
[시론] 존엄사 판단은 보다 신중하게

▲한 호스피스가 말기암 환자를 돌보고 있다.©뉴스미션
지난 11월2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김천수 부장판사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어머니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김모(75세,여)씨의 자녀들이 낸 소송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하여 언론보도에 적지 않은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중단을 합법화시킨 경우라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소극적 안락사가 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최초의 법적인 판단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판결은 아주 모호한 판결로서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의 요소도 있고, 소극적 안락사의 요소도 있는 성급한 판결이다. 왜 그런가?

첫째로, 가장 중요한 혼란의 원인은 환자가 식물인간상태에 있을 때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환자를 진단한 의사는 뇌사상태는 아니지만 식물인간보다 나쁜 상태에서 자발적 호흡이 돌아 올 가망성이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고, 법원은 이 판단을 받아 들였다.

우선 우리는 담당 의사의 판단의 신뢰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담당 의사는 자발적 호흡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의식이 회복돼도”라고 말함으로써 앞에서 한 말을 스스로 뒤엎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담당의사의 판단이 맞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간의 생명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불가역적인 뇌사상태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의사가 진단한 대로라면 불원간에 뇌사에 이를 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쫓기듯이 황급히 결정해야 했는가? 아무래도 환자 자신의 생명 보다는 남은 가족들의 경제적인 부담이라는 복리를 고려한 것이 아닌가?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극적 안락사’와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를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 두 가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소극적 안락사’는 영양액을 공급해 주면 심폐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서 영양공급을 중지시켜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때 영양공급을 중단하는 행위는 환자를 굶겨 죽이는 행위로서 비윤리적이다.

또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통하여 자발적 호흡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되는데도 불구하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행위도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이 경우는 치료효과가 분명히 예상되는 데도 치료를 중지하는 것이므로 비윤리적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은 의학적인 치료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임종으로 향하여 가는 과정이 불가역적일 때, 환자의 명확한 의사표명을 전제로 하여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의 과정을 맞이하도록 하는 조치를 말한다.

진료의 중단은 죽음의 원인이 질병이나 노화와 같은 자연적인 과정인 반면에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는 영양공급을 중단하는 인위적인 조치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므로 진료의 중단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이 성립되기 위한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의학적인 치료가 무의미한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확인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판결의 경우에는 이 점에 있어서 성급했다.

이 판결이 완전한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자 자신이 아닌 제삼자의 대리판단은 환자 자신보다는 남아 있는 가족이나 판단자 자신의 입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게끔 되어 있다.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평소에 진료 중단 의사를 밝혔다고 하지만,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환자의 속마음이 정직하게 표현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환자의 사전유언제도가 확립되어 있으면 사정이 훨씬 나아질 수 있겠으나, 이 경우조차도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의 환자의 마음과 문제의 상황에서의 환자의 마음이 동일하리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사건처럼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고 쟁점화 되어 있는 사안에 대하여 한두 사람의 법관이 자기 자신이 확보한 정보에만 근거하여 단정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보다 신중을 기했어야만 했다. 정당한 진료의 중단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문제가 많은 소극적 안락사와 진료의 중단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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