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이재철 목사와의 대담을 통해 자신의 인생사를 펼쳐 놓고 있는 이어령 박사. 그는 자신의 문학을 관철했던 언어의 변화를 통해,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 해답은 바로 예수님의 삶 속에 있었다.
 
 ▲이야기 중인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혁명과 소통을 뛰어넘는 화해와 융합의 언어

양화진문화원(명예원장 이어령, 원장 박흥식)이 17일 오후 8시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에서 ‘장군의 수염’라는 주제로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의 두 번째 인생 대담을 진행했다.

지난 첫 번째 대담에서, 22살의 나이에 <우상의 파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던 무렵을 중심으로 자신의 문학적 소신과 인생관을 솔직하게 풀어냈던 이어령 박사는 이번 대담에서 자신의 인생과 문학 활동을 아우른 언어와 그 언어들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화두는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세계에 나타난 언어를 크게 세 가지로 표현했다.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의 언어,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언어,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의 언어가 그것.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박사는 “프로메테우스의 언어는 신과 인간을 갈라놓는, 자연의 질서와 기술의 질서를 갈라놓는 불의 언어, 반항의 언어이고, 헤르메스의 언어는 대립돼 있는 세계의 담을 뛰어넘고 모순의 강을 건너뛰는 다리의 언어”라며 “오르페우스의 언어는 상충하는 것을 하나로 묶는 결합의 언어”라고 설명했다.

초창기 ‘불의 언어, 파괴의 언어, 반역의 언어’로 상징되는 프로메테우스의 언어들로 일관되던 그의 작품 세계는 4ㆍ19 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후부터는 헤르메스의 언어로 전향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의 언어가 가진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혁명을 하고 진보하려면 프로메테우스의 언어가 필요하지만, 다이너마이트로 빙산 전체를 부술 수는 없듯 파괴의 언어로는 뭔가를 창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빙산을 없애려면 기후가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헤르메스가 지팡이를 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듯 작품을 분석했다. 이른바 소통의 문학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언어는 모든 것의 화해와 융합을 지향하는 오르페우스의 언어로 바뀌었다. 최근 그가 ‘생명’과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이 박사는 “혁명의 언어만으로는 상처를 씻을 수도 없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헤르메스가 되어 서로 소통하게 하려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한 게 있더라”며 “오르페우스의 언어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춤을 추며 서로 사랑하고 화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재철 목사ⓒ양화진문화원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생명과 사랑’ 회복해야

이 박사는 오르페우스의 언어와 기독교의 메시지를 연관시키면서, 이 시대가 회복해야 할 생명과 사랑의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유대교가 가장 취약했던 것이 용서와 사랑에 관한 것이었는데, 모세도 알려주지 못한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언어를 예수님이 가르치심으로 기독교가 탄생한 것”이라며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향해 분노하셨던 ‘저항의 예수님’만으로는 기독교가 2천 년의 역사를 지켜올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과 정의의 종교를 사랑과 용서라는 보편적 이야기로 바꾸셨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재철 목사는 “구약성경에 용서와 사랑이 있었지만 이를 경전으로 삼은 유대교에는 사랑과 용서가 없었고, 예수님께서 이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잃어버린 언어가 있다면 그건 가장 흔한 말인 생명과 영혼과 사랑”이라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새로운 말 역시 생명과 사랑이다. 이 시대에 사랑과 생명을 이야기하는 바보가 나와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말이 부족한 게 아니라, 좋은 말들을 모두 사탄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처럼 생명과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되, 어떠한 부조리와 불의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지켜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딸을 잃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신앙이다. ‘열심히 믿었는데 왜 데려가시느냐’고 하면 되겠느냐”며 “‘뭐 해 주시면 뭐 해드리겠습니다’라는 기도는 절대 하면 안 된다. 그건 바로 예배를 드려야 할 교회에서 비둘기를 팔던 상인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회가 세상의 방식을 좇지 말고, 세상이 교회를 본받아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박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있어서 교회의 문법에 사회를 끌어들여야지, 교회의 문법을 버리면서까지 한다면 정치와 다를 바 없다”며 “교회의 콘텍스트에서 하는 것과 세속에 매몰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이재철 목사는 “‘정치 문인, 정치 목사라는 말처럼 정치인이 아닌 사람에게 ‘정치’라는 말이 붙는 게 가장 큰 모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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