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음직한 기억 한 토막. 어렸을 때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죽으면, 아빠와 함께 정성껏 묻어주고 나서 아빠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메리(해피나 쫑일 수도 있다.)도 천당에 갈수 있나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만 안겨 준다. “천당에는 사람만 갈 수 있단다.”
 
이처럼 철저하게 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리스도교의 생각이 바뀐 것은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은 물론, 자연 세계를 포함하는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불과 수십년 전에 와서야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이른바 '생태신학'의 출발점이다.
 
이같은 생각의 출발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피조세계를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무분별하게 착취해 온 인간의 행태에 대한 반성이다. 즉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이 오로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생태신학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동물과 자연을 포함하는 피조세계의 ‘권리’에 대한 것이다. 예컨대, 육식을 하는 인간들의 식욕을 채워 주기 위해 이른바 ‘공장식 사육 시설’에서 비참하게 길러지고 종국에는 참혹하게 도살당하는 소와 돼지들의 권리, 그리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잔인하게 자행되는 실험에 이용되는 살아있는 토끼와 쥐의 권리에 대해 당연히 던져 봐야 하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먼 나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마다 평균 십만 마리의 반려동물들이 유기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떻게 보면,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 닭 등이 생매장으로 살처분되는 광경에 비하면 오히려 덜 잔인하게 느껴지기조차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성찰이 시작된 것은 생태신학의 태동보다 훨씬 늦은 1970년대의 일이다. 존 해리스와 로슬린드 고드로비치가 1971년에 <동물, 인간, 그리고 도덕>을 출간한 이후, 1975년에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1976년에는 앤드류 린지의 <동물권: 기독교적 평가>, 그리고 1977년에는 스티븐 클락의 <동물의 도덕적 지위>가 연달아 출간되면서 동물에 대한 현대 서구 학계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지작됐다.
 
 

최근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장윤재 교수가 번역, 출간한 <동물신학의 탐구>(앤드류 린지 저, 대장간 펴냄>은 이제까지 동물권 논의와 관련해서 이어져 온 ‘의무론적 윤리의 입장’을 뛰어넘어, 동물의 권리문제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반한 정의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하나님의 정의는 가장 약하고 무고한 자를 우선적으로 감싸는 적극적 정의인 동시에 ‘모두를 위한 정의’(justice for all)이며, 이것이 동물권 문제의 핵심임을 저자 린지는 강조하고 있다.
 
특히 린지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가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사실, 즉 ‘차이’에 대한 강조 위에 이루어졌음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도리어 ‘특별한 도덕적 배려의 원리’가 된다고 논리를 뒤집는다.
 
린지에 의하면, 지금 동물에 대한 인간의 학대는 두 개의 검증되지 않은, 그리고 사회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전제 위에 이루어진다. 첫째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는 전제이고, 둘째는 동물은 도덕적 권리의 합법적 주체가 아니라는 전제이다. 특히 이 두 번째의 전제는 바로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기반으로 정당화 되고 있다.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혹은 의식이 없어서, 혹은 문화를 갖지 않아서, 혹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서 우리와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그런 동물을 맘대로 다루어도 괜찮다’는 것이, 우리가 그동안 익히 들어 온, 동물 학대를 정당화하는 논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린지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런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 차이가 과연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데 어떤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린지는, ‘인종과 종교와 성과 국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해도 된다는 논리가 틀린 논리라면, 똑같은 논리가 왜 동물에게는 적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차별의 근거였던 차이를 도리어 특별한 도덕적 배려의 원리로 뒤집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이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동물신학의 탐구 Creatures of the Same God: Explorations in Animal Theology인 것도 이런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앤드류 린지

저자 린지는 영국 성공회 신부로서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신학부의 교수로 있으며 2006년부터 ‘옥스퍼드 동물윤리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1976년 <동물권: 기독교적 평가>라는 기념비적 저서를 출간한 이후, 1988년에 <기독교와 동물권>을, 1994년에 <동물신학>, 199년에 <동물복음>과 <동물의례>를 각각 출간한 이후 2007년에 이 책을 출간한, 이 분야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역자인 장윤재 교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일치협력국 부장과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의장을 역임하고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신학과 경제, 신학과 생태 에큐메니즘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역자는 서문에서, “동물학대는 몇몇 개인의 병리적 현상이 아니며, 동물에 대한 학대는 사회적으로 합법화되고 제도화된 폭력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의도적인 무지’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보고도 못 본 체 한다. 듣고도 못 들은 체 한다. 아니 우리는 우리 앞의 동물을 보지 못한다. 저 밖에 움직이는 물체로서 볼지는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고 지각이 있는 존재로서 동물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언어, 우리의 철학, 우리의 과학, 우리의 종교, 우리의 문화가 그들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의 문제는 우리의 철학과 윤리와 종교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이 책이 ‘동물 문제를 아직도 신앙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에 기여할 수 있기를’ 역자는 소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복음은 ‘인간에게만’ 복음이었지만,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 특히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학대 받아온 동물들에게도 기쁜 소식, 해방의 소식이 되어야 한다”는 게 역자 서문에서 밝힌 그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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