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계의 한 매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목회자의 사례금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비율이 67% 가량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이 조사에서는 생계를 위해서라면 ‘투잡(two job)’도 가능하다는 목회자들이 70%를 넘어섰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목회자들의 이중직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중직을 고민하는 목회자들을 탓하기 이전에 교회가 이들로 하여금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목회자 이중직의 실태를 살펴보고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해 보는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모았다.
 
 ▲목회자 이중직 세미나에서 조성돈 교수가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뉴스미션

목회자 67% 최저생계비도 못 받아…오로지 ‘생존’ 위해 겸직 선택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와 기독교월간잡지 <목회와신학>은 17일 오후 서울 신반포중앙교회에서 ‘목회자의 이중직, 불법에서 활성화까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목회자 이중직 문제는 지난 4월 <목회와신학>이 900여 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발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 설문조사 결과가 자세히 발표됐다.

조사 결과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63만 원)에도 못 미치는 사례금을 받는 목회자가 66.7%, 대법원이 제시한 최저생계비(244만 원)에도 못 미치는 경우는 85.6%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중직을 찬성한다’는 목회자의 비율이 약 73.9%에 달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대 젊은 세대의 경우 92.3%라는 압도적인 수가 겸직을 지지했다.

목회자의 겸직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70.4%로 가장 많았다. 목회자들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생계 유지를 위해 직업을 찾는다는 것이다.

응답자 가운데 겸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의 비율은 37.9%로 나타났다. 사례비와 관련해 겸직의 비율을 살펴보면, △120~180만 원의 경우 27% △80~120만 원의 경우 40.1%로 조사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조성돈 교수는 “사례비가 높을수록 겸직의 비율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정하는 최저생계비만 보장이 되어도 겸직보다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겸직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생계를 목적으로 겸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조 교수는 “인터뷰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교회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개척을 하는 목회자들이 자신의 전 재산에 가족과 지인들의 돈을 빌려 목회를 시작하지만 교인은 안 모이고, 월세는 꼬박꼬박 나가야 하고, 교회에서 기도는 하는데 현실은 보증금이 다 없어지고…. 결국 빚에 빚을 지고 카드빚까지 늘어나고, 교회당에서 쫓겨나고, 목회자로서 설 자리를 잃고 빚더미만 껴안고 빚 갚는 일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는 일하면 안 되나…‘선교적 관점’ 제안도

이날 세미나에서는 현재 겸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직접 자신의 사례를 발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정용훈 목사는 “목회를 시작하고 자녀들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야간 택배물류센터에서 1년간 일했다”며 “올해 다시 위기가 찾아와 다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어떻게든 버티겠다고 해서 지금은 목회만 하고 있다. 다행히 3년 전부터 문화센터를 운영하며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미자립교회의 목사에게는 달마다 오는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자녀 등록금, 생활비 등을 감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목사나 사모가 일을 해야만 한다”며 “교단들에서 법으로는 이중직을 금했다고 하는데, 그럼 신학교 교수, 강사, 기관에서 사역하는 목사들은 이중직 아닌가. 그들은 눈감아 주는 것인가. 과연 목사가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사례 발표자로 참석한 이재학 목사.ⓒ뉴스미션

이재학 목사(하늘땅교회)는 목회자 이중직을 목회적, 선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지난 2010년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양계농협에 취직해 신우회를 조직하고 이들과 함께 정기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목사는 “일을 하게 되면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더 힘 있게 심방도 하고, 어린이축구교실도 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나고, 사람들을 만나 지역을 배우는 일이 쉬워졌다”며 “목회 이중직을 목사가 직업을 가지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로만 접근할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목회자 이중직을 목회적 도구로, 선교적 삶이 직장에서 펼쳐지는 영역으로 봐야 한다”며 “상황과 형편에 맞게 세상 속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주의 제자로 세우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단, 이중직 금지조항 해지하고 일자리 창출 힘써야

이처럼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사례금을 받으며 생계를 고민하고 실제로 ‘투잡’을 뛰는 목회자들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이제는 교단들이 목회자들의 생계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조성돈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교단은 목회자의 겸직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책임져 주지도 않으면서 금지조항만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각 교단이 유지하고 있는 겸직 조항을 해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목회자를 범법자로 몰아가지 말고 떳떳하게 일을 하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교단이나 지방노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육하고 일자리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등 한국교회가 목회자의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며 “파트사역으로 생계에 도움이 되면서도 목회가 큰 부담이 없는 일들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목회자의 최저생계비와 노후에 대한 제도적 보장도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교단이 이들을 목회자로서 자신들의 공동체에 편입했다면 그들의 삶도 책임져 줘야 한다”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은퇴 목회자들의 노후대책에 대해서도 한국교회가 진지하게 고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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