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 속도와 효율, 성장 만능주의를 거부하고 교회의 인격성과 공공성 회복에 초점을 맞춘 ‘슬로처치(slow church)’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고 있다.
‘맥도날드화’한 교회성장론의 허구성 밝힌다
전 세계적인 슬로(slow) 열풍의 도화선이 된 것은 슬로푸드 운동일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세계화와 산업혁명의 폐해에 맞서는 풀뿌리 먹거리 운동으로, 198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15개국의 대표가 모여 서명한 선언문이 시초가 됐다. 현재 전 세계 53개국에 1300개의 지국과 1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슬로푸드는 로마의 명물 스패니쉬스텝스(Spanish Steps)에 맥도날드가 입점하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했던 시민들의 시위에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통음식인 팬네파스타가 담긴 접시를 손에 들고 “패스트푸드는 싫다! 슬로푸드를 달라”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후 ‘느리게 살자’는 의미의 슬로시티 운동, 친환경 농부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슬로머니 운동 등이 생겨나면서, 슬로푸드는 국제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슬로처치>의 저자 크리스토퍼 스미스와 존 패티슨은 이러한 운동이 교회에 던지는 질문에 주목한다. 각종 슬로 운동이 ‘빠름에 대한 맹신’에 굴복한 기독교 공동체를 향해 슬로처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책에서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상명하달의 교회성장론은 단기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어들였다”며 “이러한 교회성장론은 교회의 지속적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형화된 사역들, 성도를 끌어모으기 위한 표적 마케팅, 유명 인사가 되어버린 성직자, 철저히 각본화된 예배, 일종의 브랜드가 된 교회, 기계적인 교회 운영, 공식처럼 알려진 교회 성장법 등이 개교회의 상황 혹은 지역의 특수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
두 저자는 슬로푸드가 산업화한 농업과 음식 문화를 비판했듯이, 슬로처치는 산업화한 교회와 맥도날드화한 교회성장론의 허구성을 밝히고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해 준다고 이야기한다.
맥도날드화란 ‘패스트푸드 매장이 전 세계를 잠식해가는 원리에 의한 사회 현상’으로, 효율성과 수량화 가능한 결과들, 예측 가능성, 통제성으로 대표되는 특징들을 갖는다.
이 책은 기존의 교회들이 추구했던 속도와 효율과 성장 대신,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사회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이웃과 친구가 되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구원과 화해의 장으로 만드는 전령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 길은 느리게, 섬세하게, 친절하게, 따뜻하게 걸어가야 할 흥미진진한 여정임을 밝혀둔다.
슬로푸드 운동에 착안, ‘인격성ㆍ공공성’ 강조
이름과 철학 모두 슬로푸드 운동에서 비롯된 슬로처치. 두 저자는 슬로처치의 원칙 역시 슬로푸드 운동의 원칙에서 착안, ‘윤리, 생태, 경제’라는 세 단어로 재구성했다.
윤리는 효율성과 양에 집중하는 산업화의 논리에 저항하는 것으로, 양보다는 질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며, 생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소명이 반드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이해돼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는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과 연관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원칙을 아우르는, 슬로처치의 가장 중요한 실천 사항은 바로 ‘대화’다. 이 책에서는 사람과 공간에 대한 신의,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기, 하나님의 화해 사역에 협력하는 것, 교회됨을 위한 식탁 교제 등 11장에 걸쳐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예수님을 따라 신실하게 일하는 인격적 교회론’으로 정의되는 슬로처치는 신자들이 수동적인 영적 소비자로 머무는 교회 이상의 교회를 지향한다.
이 책의 맺음말에서 두 저자는 교회가 다음 세 가지 유혹을 뿌리쳐야 함을 강조한다.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신앙을 질이 아닌 양으로 측정해 권력과 특권을 누리라고 부추기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 우리 개인이나 우리 지역이라는 좁은 범위만을 바라보라고 부추기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꾸만 쌓아두고 싶은 탐욕의 유혹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