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목사ⓒ뉴스미션
신간 <악의 뿌리>(넥서스크로스)는 강렬하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신자도, ‘악인’이라는 고백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인은 드라마 또는 뉴스에 나오는 그런 부류가 아니던가. 저자인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이자 골든게이트 신학교 목회학 교수 고승희 목사는 죄의 뿌리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음에 주목했다.

핵심은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내’게 있으면 그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성경 속 믿음의 인물인 이삭과 야곱, 유다도 그들의 삶 안에서 ‘악’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삶의 한 토막에서 발견하는 그들의 ‘악’이 있어 다행이다. 우리의 ‘악함’도 극복의 대상이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 고승희 목사와 이메일로 인간 내면에 있는 ‘악’과 궁극적으로 ‘악’을 다루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악의 뿌리’를 구상하게 된 배경이 있나.

역대하 7: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한다는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했다. 이 말씀을 통해 섬기는 교회를 고쳐 주셨다. 말이 늦은 아들을 회복시켜 주셨고, 수많은 가정들을 살릴 수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매일 이 말씀을 묵상했다. 어떤 교회를 찾아가든 이 말씀을 나누게 됐다. 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중보기도 (토지 무르기)와 악 그리고 겸손,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개념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던 중 넥서스cross로부터 악에 대한 책을 쓰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받았다. 새벽 예배 때 악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무엇이 악인지를 알아야 악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본 개념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 달이 넘도록 악에 대해 설교했다. 악의 깊이가 이렇게 깊다는 것을 스스로도 다시 알게 됐다. 처음에는 악에 대하여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쓸 수 있을까 염려됐는데, 한권으로 부족하구나, 어떻게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정도였다. 흩어진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제 자신이 더 많은 은혜를 입게 됐다.
 
- 교회 안에서 내가 ‘죄인’이고 ‘죄’를 짓지 말자는 말은 익숙해도, ‘악’은 낯설다. 특히 ‘죄인’이란 고백도 어려운데 내가 ‘악인’이라는 고백은 어려울 것 같다.
 
모든 단어의 기본 개념이 중요했다. 잠언을 읽으면서 죄의 반대편에 있는 의와 선의 반대편에 있는 악을 비교하는 것을 봤다. 성경은 의인과 죄인을 비교하지 않고 의인과 악인을 비교한다. 학문적으로는 이것을 ‘Reference Error’ 즉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한 것이라고 한다. 왜 일까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받은 은혜가 컸다. 죄의 뿌리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뿌리가 되는 ‘악’의 문제라는 것이다. 죄의 근거를 제공한 것이 ‘악’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다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함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됐다. 이렇게 됨으로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더 이상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될 의인이 됐다. 의의 개념이 달라졌다. 복음 전에는 법을 지키는 것이 의였다면 이제부터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앞으로 나오면 의가 된다. 복음에 나타난 의를 기준으로 할 때 악과 대조가 되기 시작한다. 자신의 뜻과 자신의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에 있으므로 주님 앞에 나가지 않는 것은 악이 된다.

- 성경 속 에피소드, 인물의 모습을 ‘악이 어떻게 보여지는가’라는 시각에서 제시했다. 그런 시각에서 보니 어떤 누구도 성경 속 ‘위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죄인’이라고 느껴지게 된다.

맞다. 성경은 끊임없이 성경 속의 인물이 허물지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는 말씀이 타당하다. 아내를 두 번씩 팔았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됐다. 충실한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이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부하를 죽였던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러 주셨다. 패역부도의 소생인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으로 세워 주셨다.
 
우리는 기본 개념을 이해했을 때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냐를 알아야 한다.
경영학에서 하버드 대학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사례연구(case study)다. 실제 삶에서 악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어떻게 악을 벗을 수 있었는가를 살펴본다면 이론을 우리들의 삶에 더욱 구체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론은 실제와 함께 할 때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 책에는 목사님 자신이 경험한 ‘악의 뿌리’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 누구든 ‘내가’를 벗어나지 못한다. 죄인지 인식하기도 어렵다. 이걸 깨닫는게 가능한가.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죄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 고쳐나가기가 쉽다. 우선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다. 또 그런 모습을 지적받을 때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악하다고 말하면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악한 줄을 알고 있다면 당연한 것이 되고 고쳐야 될 일이 된다. 그래서인지 저희 교회에서는 ‘이 악질을 봐라’는 말이 마치 애칭처럼 되고 있다. 악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서로를 격려하여 악을 떠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거기서 시작된다.
  
- 내 안의 악의 뿌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던 고백이 그것이 아닐까 싶다. 내안에 악의 뿌리는 극복이 가능한가.
 

성경은 우리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싸움이다. 이기든지, 지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악을 대항하여 이기는 방법이 바로 십자가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그리고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 악을 떠날 수 있다. 언제나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며, 내 원대로 되기를 기도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를 생각해야 한다.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할 때 우리는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삶에 늘 필요하다. 날마다 악에 대하여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주기도문에도 나타나 있다. 주문처럼 외우는 기도문이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악의 뿌리를 깨달은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달라.
 
모든 병을 고치는데 있어서도 가장 먼저 진단이 필요하듯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악이 태동하고 자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지만 하나님이 도무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불법을 행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주님이 싸우셨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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