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안의 표절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는 자리가 열렸다. 27일 오후 7시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청어람ARMC,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공동 주최로 열린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이 그것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교회와 신학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학위 논문 표절, 신학 서적 표절, 설교 표절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개혁연대, 기윤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청어람이 27일 오후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개최한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뉴스미션

석ㆍ박사 논문은 ‘심각’…신학자들 표절 유형도 다양

학술 논문 표절에 관해 발제한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는 교단과 신학교육기관 자체의 영세성과 폐쇄성 때문에, 신학계의 표절이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심한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교단과 신학교육기관 자체의 영세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일반대학의 보편타당한 준칙을 그대로 준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사안이 발각돼도 대강 넘어가려는 인습적 관행, 일일이 검증하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 학교 자체의 명예에 먹칠할까봐 쉬쉬하며 미봉적으로 대응하려는 태도 등이 표절 관행에 대한 그간의 헐렁한 태도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신학계에서 나타나는 표절의 유형과 방식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학위논문 표절 △재탕 삼탕의 자기 표절 △제자 논문의 수탈 표절 △남의 논문 부분 갈취 또는 무단 전재가 그것.

이 가운데 한국 신학대학의 대학원에서 쓰는 석ㆍ박사 과정의 논문 표절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차정식 교수ⓒ뉴스미션

그는 “지도교수가 일일이 논문을 지도하거나 표절 의혹을 검증하기 어렵다 보니, 대강 구색을 맞춘 논문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고, 개중에는 남의 논문을 거의 전부 베낀 경우도 발견된다”며 “해외에서 목회학ㆍ철학ㆍ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표절이 뒤늦게 발각돼 학위가 취소되고 한국의 직장에서 해고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신학자들의 경우 △자신의 학위논문을 챕터별로 쪼개 번역, 각색한 뒤 국내 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 출판함으로써 학위논문과 별도로 추가 실적을 쌓거나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학술지나 잡지에 실린 자신의 논문을 일부 수정, 편집해 다른 학술지에 게재(재탕)하기도 한다고 차 교수는 설명했다.

제자 논문의 수탈 표절에 관해서는 “제자들의 학위논문이 도서관에 저장되고 외부에 별로 노출되지 않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제자가 추후 그 사실을 알게 돼도 폭로하지 못하는 건, 스승과의 암묵적 연고관계로 인해 생사여탈과 취업 알선 등에 긴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학자가 쓴 논문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용부호 없이 자신의 논문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가장 흔한 표절 사례다. 차 교수에 따르면, 출전의 본문뿐 아니라 관련 각주 자료까지 베끼는 경우, 남의 논문 전체를 아무 사전 승인 절차나 인용 처리 없이 자신의 저서에 통째로 집어넣는 방식 등이 발각된 사례들이 있다.

신학교수는 ‘불가침의 권력’…출판사에게도 갑(?)

SNS에서 ‘신학서적표절반대’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이성하 목사(원전가현침례교회)는 언제부턴가 신학교수라는 위치가 ‘불가침의 권력’으로 타락하면서, ‘상식을 초월하는 일(표절)’이 벌어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심각한 사례는 번역서가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그 책을 표절하는 것이다. 한 신학교수는 자기가 표절한 책을 자기 책과 함께 교재로 사용했다”며 “자기가 표절한 책들이 번역돼 나오는 상황에서도 저자들은 표절한 책을 절판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판매하고 교재로 사용해왔다”고 말했다.
 
 ▲이성하 목사ⓒ뉴스미션

이어 “왜 이런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교수라는 위치가 이미 불가침의 권력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다. 일반 대학교의 교수보다 신학대학의 이 불가침의 권력에 더 쉽게 유혹되는 까닭은 그들이 교수이자 목사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이 목사는 신학교수들의 불가침의 권력이 출판사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고 말했다. 저명한 교수들은 출판사와의 계약에서 문서상으로는 ‘을’이지만 실제로는 ‘갑’이라는 것.

그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 출판물의 내용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저자가 책임을 진다는 조항이 있지만 표절한 교수에게 출판사가 책을 묻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며 “그 저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활동할 것이고, 그 저자의 유명세가 지속되는 한 책은 계속해서 팔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학계의 심각한 표절 문제를 타개할 대안은 무엇인가. 이 목사는 학계의 치열한 반성만이 유일한 출구전략이라고 피력했다. 선진국 수준의 표절 기준을 세우고, 표절 논란이 된 저서와 논문에 대해 회원제명, 경고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차정식 교수도 심사과정이 보다 엄격하고 투명해지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신학교수들의 임용 및 승진/재임용 평가 기준 다변화 △논문 일변도의 글쓰기 지양 및 △학자들이 연구 역량과 글쓰기 실력을 평소 충분히 축적할 것을 제언했다.

“교묘한 짜깁기, 설교 통째로 베끼는 것보다 악해”

이날 포럼에서는 설교 표절 문제도 다뤄졌다. 서문강 목사(중심교회)는 설교 표절에 대해 “설교의 문제 자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설교자의 신앙 양심까지 수반되는 문제”라며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속여 자신을 높이는 기만적인 술수”라고 비난했다.

그는 목회자가 설교 표절의 시험에 빠지는 원인으로 △설교자로서의 소명이 불확실할 때 △꾸준한 설교자로서의 묵상과 연구 및 사유의 과정이 무시될 때 △하나님이 각 설교자에게 주신 개성의 중요성을 무시할 때 △설교의 효과를 내려하거나 성공지향적인 야심이 생길 때 △말씀과 기도하는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일로 부산할 때를 꼽았다.
 
 ▲서문강 목사ⓒ뉴스미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설교를 전혀 참조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서문 목사의 견해다. 독창적 설교만을 고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독선적이 될 수 있고, 설교의 내용이 빈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따라서 다른 이들의 설교를 듣고 참조하는 습관도 설교자의 사역에서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조명을 얻고 은혜를 받았다면, 설교자는 자기 설교를 통해 회중들에게 그것을 나눌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목적에서 남의 설교를 자료로 삼았다면 표절이 아니”라고 말했다.

단 “기본 자료의 원천을 밝혀야 할지의 여부는 설교의 형식과 내용에 따라, 설교자의 묵상과 재해석을 거쳤다면 양심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문 목사는 “교묘한 짜깁기는 표절 중 가장 악한 형태다. 남의 설교 전체를 통째로 가져다 쓰면서 자기 설교인 양 하지는 않지만, 남의 설교만 뒤지고 다니다 만난 자료들을 뽑아 짜깁기해 설교하는 건 분명한 표절”이라며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주신 개별성, 즉 ‘나와 같은 설교자는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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