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는 전화하세요." 한 시골 교회 목사가 SNS에 올린 글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선주 목사가 교인들에게 나눠준 안내문(사진 출처: 김선주 목사의 페이스북)

"목사는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

충북 영동군 물한계곡교회의 김선주 목사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목사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13일) 주일에 교인들에게 찌라시 한 장씩을 주며 전화기 옆에 붙여놓으라고 했다"며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고 타이틀을 붙였지만, 내가 의도한 타이틀의 속뜻은 <목사 사용 설명서>다. 본래 의도대로 타이틀을 붙이면 교인들이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아 순화시켰다"고 말했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찌라시'를 보면 10가지 상황을 제시하며 "이럴 때는 전화하라"고 권하고 있다. 

△보일러가 고장나면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냉장고, 전기가 고장나면 △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안 되면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몸이 아프면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하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몇 명 안 되는, 노인들이 전부인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내 진심을 가로막는 일들을 경험하게 됐는데, 그것은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지나친 분리의식이었다"며 "목사는 기도만 하고 말씀만 연구하며 교인들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서 분리된 영역에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목회자는 섬기는 직분이라고 누누이 설교를 해도 하나의 잘못된 관념에 빗장질린 그들의 마음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그래서 급기야 이런 유치한 찌라시를 손에 들려주고야 말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걸 통해 교인들이 나에게 전화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 문구들을 한 번씩이라도 읽을 때마다 목사가 당신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의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0가지 항목 중 마지막 항목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웃자고 넣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김 목사는 "이들의 화투는 10원 내기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하루 종일 화투를 쳐도 판돈이 2, 3백 원을 넘지 않고, 돈을 딴 사람은 그 돈을 반찬값으로 경로당 공금에 기부하는 게 관례"라며 "화투는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동계스포츠다. 예수님의 복음이 교인들의 사소한 기쁨까지 빼앗고 건전한 욕망의 지향점까지 통제하는, 옹졸한 규범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페이스북 글에 누리꾼들은 "깨알 같은 목회의 즐거움이 있네요", "저도 부르고 싶어지는 목사님이시네요", "정말 감동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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