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번역한 최초의 주기도문이 발굴됐다. 이수정 역 주기도문은 존 로스 선교사가 번역한 주기도문보다 완성도가 높아 한국교회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2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이수정 역 주기도문이 실린 잡지를 설명하고 있다.ⓒ뉴스미션
 
성경 번역한 이수정, 주기도문 번역은 처음 알려져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20일 한경직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수정 역 주기도문 발견 과정과 교회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미국성공회에서 발간하는 잡지 1884년 5월호에서 이수정 역 주기도문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수정은 1882년 박영효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인 즈다센을 통해 처음 복음을 접했다. 1883년 4월 로월정교회(현 시바교회)에서 야스가와 목사와 조지 낙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한국교회사에서 이수정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미국교회에 한국선교를 촉구한 편지를 보낸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존 로스 선교사와는 별도로 마가복음을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박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도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하기 전에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성을 가지고 입국한 사례는 한국밖에 없다"며 "이수정 역 마가복음은 초창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선교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수정 역 주기도문의 발견은 한국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인 중에서 최초로 주기도문을 번역하고, 존 로스 역 주기도문과 비교해서도 더 완성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글로 번역된 주기도문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때는 1884년 존 로스 역 마태복음 출간부터다. 하지만 주기도문 후반부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가 생략돼 미완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가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실물로 확인된 바가 없어 존재마저도 의심받는 상황이다.
 
박용규 교수는 "이수정에 대한 자료들이 많이 소개됐지만 주기도문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학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라며 "한국인으로서는 이수정 역 주기도문이 최초"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BSR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수정의 다양한 활동들이 추가로 발견돼 이수정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한국선교 호소한 이수정의 편지…언더우드의 마음 움직여"
 
이수정과 언더우드와의 관계도 다시금 조명됐다. 언더우드는 잡지에 실린 이수정의 편지를 보고 한국선교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국에 들어오기 전, 일본에 있는 이수정에게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고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기존 학설에서는 이수정의 한국선교를 호소하는 편지가 1884년 3월에 실렸다고 알려졌다.
 
박 교수는 "이수정의 편지가 MRW에 실리기 전 1882년 2월 BSR에 '한 한국인 크리스천의 호소'라는 제목으로 실린 사실을 발견했다"며 "BSR에 실린 이수정의 편지를 보고 MRW이 자신들의 저널에 게재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한국인 최초의 주기도문이 발견된 것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이수정의 편지가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의 젊은이들을 깨웠던 것처럼 이수정의 주기도문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수정이 번역한 주기도문.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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