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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칼럼] 그런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이정기 목사(신나는교회) l 등록일:2016-06-15 17:01:14 l 수정일:2016-06-15 21:56:01
▲이정기 목사
요즘 우리들은 끔찍한 사건들의 소식을 많이 듣는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최대 239명, 심각한 폐질환까지 간 사람들은 최대 1528명이라고 한다. 끔찍한 화학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생활 용품이 끔찍한 살인도구가 된 것이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이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피의자 중 한 명은 10년 전 발생했던 성폭행 범죄자인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는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 다시는 그런 사람들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성토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죽어 마땅한 사람이 사무엘하 12장에 소개된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다윗이다. 우리는 다윗에 대해 너무 좋게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들을 말할 때 ‘다윗’을 빼놓지 않는다. 일개 양치는 목동이, 자기의 아버지의 눈에도 차지 않았던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셨다. 그는 골리앗과 싸워 이김으로 사울왕보다 더 인기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다윗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20대는 도망자로 살고, 30대는 전쟁터에서 살고, 40대는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50대에 들어서자 다윗의 삶에 여유와 안정이 생겼다. 바로 이때 사건이 발생한다. 위험할 때는 어려울 때가 아니다. 잘나갈 때, 강성해졌을 때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때이다. 그래서 성경은 "선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다윗이 요압이 이끄는 군대를 전쟁터에 보내고 자기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 할 일이 없었다.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여인은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한다. 그런데 신하가 알아보고 의문문으로 보고한다. 사무엘하 11장 3절에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이것은 왕 앞에서 아주 불손한 태도였다. '그 여인은 누구입니다.' 이렇게 서술문으로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신하는 "왕이시여, 남의 여자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닙니까? 관심을 두어서는 안되는 여인이지 않습니까?" 다윗의 양심을 향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제 멈춰라.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말아라."고 하는 첫 번째 경고였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욕망에 사로잡힌 다윗은 분별력을 잃고 행동한다. 4절을 보면 3가지 동사가 나온다. "보냈다", "데리고 왔다", "동침했다". 다윗이 전령을 여인에게 보내어 데려오게 하고 여인과 동침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욕망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여인이 임신한 것이다. 다윗은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데려왔다. 임신한 아이가 우리아의 자식인 것처럼 위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던 우리아는 다윗이 계획한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일부러 최전방에 보내 전사하게 한다. 우리아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었다. 결국 다윗은 죄를 감추려고 하다가 더 큰 죄를 지었다. 우리아가 죽고 애도 기간이 끝나자, 다윗은 지체하지 않고 밧세바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았다. 하나님은 그것을 악하게 보셨다.
 
충동적인 죄와 계획적인 죄는 법의 심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 충동적인 죄는 참작이 되는데, 계획적인 죄는 그 형량이 무겁다. 다윗은 치밀한 계획 속에 죄를 지었다. 간통죄에 살인죄까지 범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일을 간섭하셨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심히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다. 그 암양 새끼는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서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잘 때에도 그 양을 품에 안고 잤다. 마치 자기 딸이나 되는 것처럼 어린양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부자는 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자기 양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에게 있는 한 마리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손님을 대접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윗이 몹시 분노하며 나단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런 짓을 한 놈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하나님께 맹세까지 하면서 그런 짓을 한 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 그러니까 다윗은 결국 자신을 향하여 분노하면서 '그런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윗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죄나 잘못은 꼭꼭 숨겨둔 채,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대하여 얼굴을 붉히면서 비난하고 정죄한다. 그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웃기는 모습인가?
 
우리는 다윗처럼 다른 사람을 향해 '너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자기 죄에 대해 분노하고 괴로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죄의 굴레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잠언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다. 죄를 숨기면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면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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