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지도 130년이 지났다. 당시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은 행정, 교통의 중심지였던 성읍을 중심으로 선교 사역을 펼쳤다. 언더우드 선교사도 1890년 수도 한양의 물류 중심이자 방어기지였던 행주산성에 성읍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파했다. 바로 행주교회다. 올해로 창립 127년을 맞는 행주교회가 제2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언더우드 처치'로 불리는 127년 역사의 행주교회. 최근 비전센터를 설립한 행주교회는 제2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정건화 담임목사는 "영적인 쉼을 누릴 수 있는 교회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뉴스미션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교회…'복음의 전진기지' 역할 감당
 
행주교회는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행주나루터는 한양으로 향하는 교통의 중심이자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최전방의 산성으로서 요지였다. 자연스럽게 사람과 물자가 몰리는 성읍으로서 행주리는 복음을 전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수도 한양에 정착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강화와 제물포 지역을 목표로 선교에 나설 무렵 행주교회는 복음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행주교회는 성도 한귀련의 여덟 칸 초가에서 시작했다. 이후,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열다섯 칸 한옥, 블록벽돌 건물 등 새 모습으로 단장하며 오늘의 교회모습을 갖게 되었다. 행주교회 예배당은 선교 초기부터 부흥의 축복을 입어 수백 명의 교인들로 넘쳐났다. 행주교회 정건화 목사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례를 주기 위한 예배에 15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였다는 기록 등 나루터를 중심으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기록들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말했다.
 
고양 지역의 첫 교회인 행주교회는 불과 3년 만인 1893년 사신교회(지금의 능곡교회)로 분립했 다. 그리고 1928년 개화리 교회를 개척했다. 하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6ㆍ25 전쟁을 거치면서 급격히 쇠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60년대 본격적인 개발 붐을 따라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줄어 여느교회처럼 성장은 정체되어 있다. 하지만 변함없이 행주교회를 지키는 이들도 있다. 행주리에서 6대째 예수를 믿고 있는 김신규 행주교회 원로장로(74세)는 "시골이라 교역자들도 수시로 바뀌고, 전쟁 통에 교회도 무너지는 등 아픔을 겪었지만 고비고비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셨다"고 회상했다.
 
행주교회는 지난해 비전센터를 완공을 계기로 제2의 부흥을 선언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목회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 목사는 "영적인 쉼이 필요한 이들, 미래세대를 위한 전원교회가 우리의 비전이며 복음을 위한 전진기지로 쓰임 받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구상을 밝혔다. 한세기를 넘기고 다시 27년 청년의 꿈으로 돌아온 행주교회, 성도들에게 포기는 없었다. 꿈꾸고 기도하는 대로 영적으로 지친 이들이 쉼을 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미래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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