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농촌에서 젊은이들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농촌의 침체와 더불어 농촌교회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입양 사역을 통해 농촌과 농촌교회의 회복을 꿈꾸는 목회자가 있다. 언젠가 자신의 마을을 ‘공동 육아 마을’로, ‘저출산 고령화 극복 체험 마을’로 세우겠단 비전을 품고 있는 양동훈 목사를 만났다.
 
 ▲명곡교회 양동훈 목사 부부는 7명의 자녀들과 함께 농촌교회 회복을 준비하고 있다.ⓒ뉴스미션

‘입양 사역’ 통한 농촌 교회 부흥 꿈꿔
 
경상북도 구미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 명곡리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60세 이상 어르신들만 거주하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4년 전 이 마을 명곡교회에 양동훈 목사가 부임한 뒤론 마을 여기저기 아이들의 뛰노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모두 양 목사의 자녀들이다.
 
양 목사 부부는 결혼 후 1남 2녀를 낳았고, 이후 입양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4명의 아들을 입양해 지금은 모두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부부는 많은 자녀들을 보다 안전하고 비용적으로도 부담이 없는 곳에서 양육하기 위해 살 곳을 찾던 중 도시보다는 농촌지역이 좋겠다고 생각해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농촌목회에 대한 어떠한 뚜렷한 비전을 바라보고 들어왔다기 보다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한 목적이 우선됐던 것.
 
그런 양 목사에게 하나님께서는 부임과 동시에 농촌교회의 현실을 바라보게 하셨다. 폐허와 다름 없는 모습의 예배당에서 드린 첫 예배에는 80세에 가까운 할머니 한 분만이 찾아오셨다.
 
“그날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내게 입양을 허락하셨고, 농촌과 농촌교회를 살리기 위해 명곡교회로 부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이제는 저희 가족들로 인해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늘었고, 교회에도 활기가 넘칩니다. 좋은 입양 환경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이 오히려 농촌과 농촌교회의 부흥을 위한 해답이 된 것입니다.”
 
그는 이날 이후 다음세대가 사라져 가는 농촌교회가 입양사역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갔다. 자신과 같은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자녀들을 입양해 믿음으로 한 세대를 살아낸다면 농촌과 농촌교회는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양 목사의 이 같은 모습에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자신의 호적에 친자로 올리는 입양을 사역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입양을 농촌 부흥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닌,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가족이라는 선물과 함께 무엇보다 가장 귀한 복음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게 귀한 일이라 생각해 감히 ‘입양사역’이라 명명했다”고 전했다.
 
 ▲양동훈 목사ⓒ뉴스미션

“‘공동 육아’ ‘저출산 고령화 극복 체험’ 마을로 세워갈 것”
 
양 목사는 이후 무너져가던 예배당을 새롭게 건축하기 위해 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응답한 수도권 대형교회와 여러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예배당을 새로 지을 수 있었다. 건축 당시 예배당을 농촌교회 현실에 맞춰 작고 가정과 같은 분위기가 나도록 만들었고, 남은 공간은 그룹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많은 방을 갖췄다.
 
그는 이 공간이 입양한 자녀들을 비롯해 사회 속에 자립하기 힘든 미혼모들이 편안하게 아기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곳으로 쓰임 받길 소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마을을 ‘공동 육아 마을’로, ‘저출산 고령화 극복 체험마을’로 세워 농촌 부흥까지도 이뤄가겠단 확고한 비전을 세웠다.
 
물론 이를 위해선 목회자 혼자만이 아닌 가족 전체의 마음이 모아져야 한다. 양 목사의 아내는 그 뜻에 힘을 실어줬고, 아이들 또한 평생 가족들과 함께 명곡리에서 살 생각이다.
 
양 목사와 함께 양봉업을 하고 있는 큰 아들은 ‘아기사랑꿀’을 팔아 아버지가 세울 입양선교회를 도울 계획이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둘째 딸은 마을에 고아들이 생활하는 그룹홈을 만드는 게 꿈이다.
 
“이제 목회자 혼자 농촌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뜻을 가진 여러 목회자가 함께 농촌에 들어와 초기 선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농촌을 바라보고 섬겨야 합니다. 뚜렷한 비전이 필요한 것이죠.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그는 현재는 힘들지만 이 마을에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교회가 가득 차며, 이를 통해 농촌이 변화될 삼십 년 후의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도 꿈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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