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아프리카는 한국에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아마 마음의 거리도 멀 것이다. 언어는 불어와 현지 토착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사하라 사막의 주변에 있어 모래 태풍의 습격도 받는 나라들이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한국 선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9월 초 8일간 방문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많은 독자들과 나누어본다.
 
'무슬림 급증' 세네갈, 선교 가능성 열려 있어
▲한정국 목사(KWMA 사무총장)


첫날 온누리교회에서 조직한 ‘더 멋진 세상’의 초청을 받아, 서부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사역자 20명과 함께 저녁을 하며 교제하였다. 둘째 날 오전 ‘더 멋진 세상’의 다카 본부를 방문하여 NGO 사역 현황을 듣고, ‘보다 효과적인 NGO 사역을 위한 제안’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1시간 하였다. 퍼주는 도움에서 생산적 도움인 한국형 국제 교육에 대해 소개하였다. 오후에는 ‘더 멋진 세상’ 사역 현장을 방문하여 농업기술연구소와 보건소 4곳을 견학하였다. 보건소는 세네갈 정부가 하던 부실 사업을 인수받아 업그레이드에는 성공하였으나, 보다 생산적인 복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셋째 날 오전은 세네갈 국립박물관을 견학하고, 동행한 도육환 정책위원은 TIM 선교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감비아를 방문하기로 하여 헤어졌다.
 
넷째 날 점심에 KWMA가 초대한 선교단체 대표 선교사 8명과 함께 한인 식당에서 식사하며, 세네갈 한인선교협의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노금석 선교사를 코디로 내정하고, 향후 전략적 선교 모색을 위해 바람직한 주제로 정기적 토론회를 갖기로 하였다. 끝난 후 별도의 장소에서 두 선임 선교사의 사역과 애로사항을 듣고 여러 토론을 하였다.
 
WEC과 세계기도정보 등의 자료에 의하면, 1864년 첫 개신교 선교사가 세네갈에 입국할 때에는 프랑스 식민지 상태에서 무슬림이 20%의 인구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36년이 지난 1900년에는 45%를 점하다가, 100여 년이 지난 2000년에는 92%까지 육박하였으니, 그들의 성장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다산 문화의 영향도 있지만, 약 3개의 주요 부족이 수피 이슬람을 신봉하면서 특유의 종교 조직을 통해 부흥을 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수를 점한 이슬람 세력은 가톨릭과 개신교에 대해 너그럽기까지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선교의 가능성은 열려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개신교 1% 말리, 미전도종족 복음화 주력
 
수도 바마코에 도착하여 시내 주요 곳곳을 드라이브하며 말리의 이모저모를 구경하였다. 특히 명절을 앞둔 시장 분위기가 인상적이며 서울의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하였다. 선교관에 도착하고 바로 그곳에서 열린 한인예배를 선교사와 한인들과 함께 드렸다. 점심 후 현지 선교사의 최고 관심사인 MK 교육에 관해 열띤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늦은 오후 니제르 강가의 모래 채취 현장을 견학하고, 배를 타서 강 중앙 섬에 살고있는 어업 전문 부족인 보조족 마을을 방문하였다. 엄청난 어린이들에 에워싸여 섬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아이들의 환호와 포옹과 악수가 이어져 배에 다시 탈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였다. 안내한 안창호 선교사는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기에 환영의 열기가 기대 이상이었다.
 
둘째 날, 새벽에 출발하여 니제르 강가의 도시 세구까지 육로여행을 3시간 하여 도착하였다. 식재료, 음료 등을 구입하여 배에 싣고 약 2일간의 니제르 강 탐험을 시작하였다. 좁은 공간이지만 셋이 둘러앉아 말리 니제르 프로젝트에 관한 발제를 듣고 국외자로서의 의견을 이야기하였다. 니제르 강은 기니에서 발원하여 말리를 긴 활처럼 흐르며 사막 일부분을 통과하여 인근 니제르를 거쳐 나이지리아로 들어가 기니만으로 흐르는 아프리카 3대 강의 하나이다. 주요 도시가 강가에 인구가 밀집한 특징을 가지는데, 많은 사람들의 젖줄이기도 하다. 주로 무슬림인 미전도 종족을 복음화하는 것이 주 사역이나, 생각만큼 만만치 않은 것이 문제이다. 말리의 개신교는 세네갈보다는 약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1%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보다는 개신교가 기독교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날 밤은 별이 쏟아지는 강가 공터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였는데, 풀벌레 소리와 함께한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잠자리 사정은 반 모래 위에 조그만 돌들이 놓여 있어 좀 불편하였으나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였다. 남십자성은 어머니 얼굴이라는 유행가를 읊조려보며 천국에 계신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엄니, 보고 싶어요…”
 
다음 날 아침,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 배에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옷을 훌렁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수량이 보통이 아니라 엄청나고 물살도 제법 있으며, 한강 넓이의 3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도저히 말리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첫날 그리고 둘째 날 마을 정탐도 있었지만 도통 시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이게 강가의 마을인가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늦은 오후에는 바마코에서 약 1시간 떨어진 강가 도시에 배가 잠깐 정박하였는데, 니제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면서 조그만 강가 건물의 (나중에 안 것이지만 유치원이었다.) 뜰에 안내되었다. 뜰 한가운데에 웬 십자가 기념비가 있었는데, 몇 년 전 말리에서 33세에 교통사고로 순직한 컴미션 소속 선교사를 기념하는 비석이었다. 마 24:14 말씀을 다시 읽으며, 그가 남긴 과업을 우리가 떠맡기로 하면서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였다. 다시 배에 올라 강 건너로 떠난 배는 곧 종착지 조그만 도시에 도착하였고, 안창호 선교사의 제자인 형제의 운전으로 먼지가 자욱한 거리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그만 꿈나라고 가고 말았다. 흔들어 깨우니 벌써 선교관 앞이었고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모든 통신시설이 끊긴 가운데 토론에 전념하여 이슬람권 복음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니, 하나님이 우리의 대화를 들으시고 이 견고한 진에 도전할 용기를 주십사하고 간구하였다. 토론 내용 중에 아주 획기적인 내용이 있어 이를 실천에 옮기는 데 더욱 노력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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