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요르단 정부의 초청을 받아 지난달 17일부터 22일까지 5박 6일간 요르단을 찾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경의 배경, 이스라엘과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마주한 요르단 역시 무려 2백여 곳에 달하는 성경 속 지명이 등장하는 나라다. 앞서 요르단 속 성경 유적들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페트라와 와디럼, 제라쉬 등 요르단 유명 관광지에 숨겨진 성경의 비밀을 살펴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페트라는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을 있게 한 장소 중 하나다.ⓒ뉴스미션

모세가 거부 당한 땅 ‘페트라’
 
요르단의 국보 1호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사막지대에 위치한 고대도시다. BC 6세기에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며, 6세기경 발생한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다가 1812년 스위스 탐험가인 요한 루드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됐다.
 
나바테아인은 이 지역에서 향료무역을 통해 번성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홍해와 지중해를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극장과 목욕탕, 상수도 시설 등을 통해 당시 발달했던 문명 도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보물창고’라는 뜻을 가진 ‘알 카즈네’다. 해발 천 미터에 육박하는 바위산 속 협곡을 따라가다 보면 페트라의 상징인 ‘알 카즈네’가 나타난다.
 
‘알 카즈네’는 6개의 거대한 기둥이 2층 건물을 지지하고 있는 형태로 겉에서 보기엔 커다란 신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바위를 깎아 만든 조형물에 가깝다. 화려한 외부와 달리 그 안은 텅 비어 있는데, 전문가들은 나바테아의 왕이었던 아테라스 3세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이 페트라가 도대체 기독교와는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페트라는 구약시대의 에돔 족속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돔'은 이삭의 장남인 에서의 별명이자 그의 후손들 또는 후손들이 세운 나라를 일컫는다.
 
에돔 족속은 성경에서 사해 남동쪽의 세일 땅에 나라를 세운 것으로 나오는데, 예레미야 49장 16절에서는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라고 표현돼 페트라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에돔 족속은 오바댜(1:3)에서도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라고 언급된다.
 
에돔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 멸망을 선고 받은 민족으로, 출애굽 당시에는 이 지역을 통과하고 싶다는 모세의 부탁을 거절한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을 돌아 동쪽으로 우회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인지 이곳 페트라에는 모세가 지나갔다고 해서 이름 붙은 '모세의 계곡'과 '모세의 샘'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고증되지는 않았다.
 
 ▲붉은 사막 와디럼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뉴스미션

‘와디럼’ ‘제라쉬’에서도 성경의 흔적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으로 불리는 ‘와디럼’에서도 성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에돔을 통과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막과는 다르게 붉은 모래로 이뤄진 와디럼에서는 모래언덕과 기암괴석이 비현실적인 풍광을 빚어낸다.
 
이곳에서는 유목민들과 같이 천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체험도 가능한데, 이를 통해 출애굽 여정에 나선 이스라엘 민족들이 묵었을 그 장소에서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르단 수도에서 북쪽으로 45㎞ 떨어진 ‘제라쉬’는 모세에 의해 정복된 길르앗 땅에 해당되며, 성경에선 ‘거라사인의 땅’,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표현된다. 예수께서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쳤던 거라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 지역 일대를 광범위하게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로마의 위성도시 중 하나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다양한 신들을 섬겼던 신전들과 함께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가 융성했던 도시였던 만큼 비잔틴 양식의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수도 암만 역시 구약시대 다윗의 오점이 남아있는 곳이다. 암만에는 '랍바성'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스라엘 왕 다윗은 유부녀인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그의 남편이자 자신의 신하인 우리야를 치열한 전쟁터였던 이곳으로 보내 죽게 만든다. 우리야가 죽은 장소는 암몬성의 서쪽 성곽으로 추정된다.

요르단에서 찾을 수 있는 성경의 현장들을 소개했다. 당시 요르단이 이스라엘 민족의 주무대였던 만큼 이밖에도 많은 성경의 유적들이 나라 전체에 퍼져있다. 더욱 생생하고 자세한 현장의 영상은 이달 말 방송되는 GOODTV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성서의 땅, 요르단을 가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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