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가 5월 18일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휴전 5년 후인 1958년 서울 대조동에서 신도 다섯 명과 가정집 거실에서 드린 창립예배를 시작으로 서대문을 거치고 여의도 시대를 열면서 20개 제자교회를 포함해 88만 성도가 섬기는 교회로 대반전의 역사를 기록했다. 천막교회, 이단 시비, 민주적 절차를 거친 세대교체, 예산 1/3 구제사업 사용 등은 이순(耳順)의 삶을 산 교회의 명과 암이다.  그래서 이번 창립 기념 행사의 주제도 '고난과 영광의 60년'. 하지만 한국교회 성령운동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세계 교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오롯이 성장했기에 고난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컸다고 강조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10일 담임목사인 이영훈 목사를 만났다. ⓒ데일리굿뉴스


천막교회로 출발 세계 최대 교회가 되기까지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1958년 5월 18일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가 서울 서대문구(현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했던 최자실 전도사의 집 거실에서 가정예배의 형태로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된다.
 
창립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조용기 전도사, 최자실 전도사, 최 전도사의 세 자녀들과 밭일을 하다가 비를 피하기 위해 온 할머니가 고작이었다. 성도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해 50여 명에 이르자 집 앞 마당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바닥에 깔고 예배를 드렸으며, 이후 점점 더 많은 성도들이 모이게 되자 가난한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모아 더 큰 천막을 구입해 천막을 넓혀 가는 일을 계속했다.
 
조용기 전도사가 군에서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1년 9월 1일, 서대문 로타리 서커스단이 자주 머물던 터에서 천막 대부흥성회가 열렸다. 이 부흥성회의 설교자는 샘 토트 목사였고 조 전도사가 통역을 맡았다. 1961년 10월 15일 부흥회가 열린 장소에 교회가 세워졌고, 이곳이 순복음부흥회관이라고 불리게 됐다.
 
조용기 전도사는 1962년 4월 26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해 5월 13일 순복음부흥회관의 명칭이 순복음중앙교회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 무렵 교회 성도가 500명을 넘어섰다. 3년 후인 1964년 서대문 개척교회는 3,000명에 이르게 됐다.
 
서대문 교회는 나날이 폭발적으로 부흥을 거듭해 성도수가 만 명을 초과함에 따라 새 성전 건축을 위한 부지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여의도는 황폐한 섬으로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조차 없었다.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고 여의도에 건물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강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교회는 자금 문제에 봉착했다. 중동 오일쇼크의 여파로 인한 건축 자재의 가격 상승과 교회 헌금 감소로 완공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성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교회는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고 성공리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1973년 9월 23일 1만 8,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성전의 헌당예배를 봉헌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 창립자인 조용기 목사의 뒤를 잇고 있는 이영훈 담임목사는 "출발은 최자실 목사님이었다. 두 분이 신학교 동기인데 최 목사님이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을 부른 거다. 조 목사님은 유학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1년만 도와달라'고 한 말에 응한 게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더라면 오늘의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게 돼서 참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순복음의 영성으로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 급성장
 
여의도순복음교회 이름 속 순복음이란 성령충만의 복음을 뜻하며, 성경의 진리 전체를 가감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이자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선교사들이 쓴 용어이기도 하다.
 
오순절운동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의 뜨거운 강림 경험(사도행전 1장8절)을 계기로 탄생한 교회들의 성령운동을 말한다. 이러한 오순절 운동은 초대교회 시대에 폭발적인 부흥을 가져왔으며, 중세시대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면서도 거대한 부흥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이다.
 

▲60년 전 서울 대조동에서 시작된 여의도순복음교회 전경

 
우리나라에 최초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한 사람은 미국 메리 럼시 선교사다.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럼시는 감리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뉴욕 주의 로체스터 성경훈련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06~1907년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의 대부흥집회에 참석해 크게 은혜를 받고 성령체험을 했는데 이때 한국 선교의 소명을 받게 된다.
 
소명은 20년 후 이뤄져 1928년 서울 정동에 도착해 구세군 조선본영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던 허홍과 함께 오순절 신앙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럼시는 허홍, 박성산, 배부근 같은 초기 오순절 지도자들을 발굴해 지원했으며, 이들 지도자들은 해방 후 오순절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명수 교수는 "오순절운동은 20세기 초 미국 LA의 조그만 거리에서 이름 없는 흑인목사에 의해서 시작됐다"면서 "그런데 이 오순절운동은 지금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인종을 초월하고, 심지어 교파를 초월해 오순절교단을 넘어서서 세계 기독교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이러한 세계 오순절운동을 대표하는 교회가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라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오순절운동의 영향으로 시작됐지만 현재 세계 오순절운동은 한국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일 뿐만이 아니라 세계교회가 주목하는 교회이기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 근대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 70년대 가장 어려운 때에 저희 교회가 성령운동을 통해서 체험적인 신앙을 전달했고 성도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면서 "10년 동안 장로교 통합 측과의 사이비 논쟁이 있었는데 그걸 통해서 오히려 교회가 더 신학적으로 정립되고 성숙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모든 어려운 시기들을 지나서 대형교단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또 저희 교회에 주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사명이 있고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사명이 있는데 저희 교회는 특별히 한국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맡겨주신거라 생각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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